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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보성장흥

벌교에선 주먹자랑 하지 마라

by 조대중여행 2021.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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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선 "인물자랑하지 마라"
여수에선 "돈 자랑하지 마라"
벌교에선 "주먹자랑 하지 마라"..

어쩌면 한번즈음 들어보았을 이야기들이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일제 강점기" 때 회자되기 시작하였다는게 정설이다
그리고 그 야기의 시작은 벌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벌교에서 "주먹자랑하지 마라"에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부정적인 의미로 벌교역 주변에 주먹을 사용하는 조폭들이 생겨나면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벌교사람들이 인정하는 주먹자랑하지 마라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대략 1930년 전후 이야기이다.

장소는 벌교 소화다리였다.
불후의 명언을 만든 주인공의 이름은 정확하게 전하지 않는다.
다만 ‘안’씨 성만 알려졌다. 그는 머슴이었다.
그것도 가장 직급이 낮은 ‘담살이’였다.
벌교 사람들은 안담살이라고 부른다.
하루는 안담살이가 소화다리에 나무를 팔러갔다.
그런데 일본 헌병 하나가 말 위에 올라탄 채 조선인을 채찍으로 때리고 있었다.
안담살이는 분개했다.
일본 헌병을 말에서 끌어내려 무참하게 두들겼고,
소화다리 아래서 떨어트려 버렸다.
결국 일본헌병은 목숨을 잃었다. 일단 도주했던 안담살이도 결국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천교도소에서 죽었다


그리고 또 한명이 등장한다.
안담살이가 벌교 주먹의 시초라면 김항수는 벌교 주먹의 완성이다.
그 또한 의기의 주먹이다.
잠깐 스쳐간 주먹이 아니다.
한때 전라도 일대를 완전하게 평정했던 진정한 주먹이다.
그가 벌교 태생이다.

그의 집안은 만만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김영돈은 판사였다.
그리고 김항수는 광주 서중에 다니는, 당시로서는 엘리트였다.
문제는 나라의 현실이다. 조선인은 아무리 재력이 있고, 머리가 뛰어나도 일본에 빌붙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는 어느 순간 공부를 접고, 조선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본학생들을 깨고 다녔다. 일단 싸움이 붙으면 그의 손발이 보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만큼 빨랐다. 더구나 그에겐 든든한 뒤가 있었다.
사고를 쳐서 잡혀 들어가도 판사인 아버지 힘으로 금방 풀려났다.


이 두가지 이야기가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마라 " 라는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두번째 이야기는 찾아봐야만 알수 있는 이야기로 근거로서는 빈약하다.

또한 벌교에 많은 분들이 안 담살이야기가 시작이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안 담살이 이야기는 실화에 이야기가 많이 가미된 진실+허구가 포함된 이야기이다.

이야기속 주인공인 안 담살이는 실존인물로 본명은 안규홍(1879~1911)이다.
몰락한 양반의 가문에서 태어난 안규홍은 벌교에서 조선인 부녀자를 희롱하던
일본 순사를 주먹으로 때려죽이고 의병이 된다.
의병인 된 안규홍은 일본 정예부대를 급습,격멸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고 일제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안규홍은 1910년 9월에 체포되고 1911년 5월 대구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며 그의 나이 32세이다.
그의 활약상은
"장하도다 기삼연 / 제비같다 전해산/ 잘도 죽인다 안담살이/ 되나 못되나 박포대
라는 민간에서 유행했던 노래에서도 잘 드러나 있지만


이야기속 소화다리 사건은 일본 연호인 소화를 근거로 소화6년에 벌교에 만들어졌기기에 안규홍이 죽고난 후에 다리가 만들었다

그래서 구전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실화에 허구를 가미한 이야기이다.

https://content.v.kakao.com/v/5b2c62dc6a8e510001937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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